우본랏차타니 (Ubon Ratchathani)
도시는 18세기 후반의 딱신 왕의 치세 때 비엔티안의 시리분산 왕으로부터 도망 온 타오캄퐁(เท้าคำผง)에 의해 세워졌다. 이후 타오캄퐁은 '프라빠툼웡사'로 임명되었고 우본랏차타니 최초의 지배자가 되었다. 1792년에 우본랏차타니는 주가 되었고 또한 몬톤 이산의 행정 중심 역할을 했다. 1972년까지 우본랏차타니 주는 태국에서 가장 큰 주였다. 1972년에 야소톤 주, 1993년에 암낫차른 주가 분리되어 현재는 5번째로 큰 주이다.
우본랏차타니는 문 강의 북쪽 기슭에 놓여있다. 강의 남쪽 기슭은 사실상 도시로 편입된 와린참랍(줄여서 와린)의 교외가 차지하고 있다.
우본은 2차 대전 때 일본군이 노동력 징발을 위해 방콕에서부터 와린까지 철도를 부설하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은 도시에 우본 왕립 태국 공군기지를 건설했다. 현재는 군민양용의 공항이 되어있다.
라오족의 영향은 도시의 종교 건축물을 통해 나타난다.
지도 - 우본랏차타니 (Ubon Ratchathani)
지도
나라 - 태국
태국의 국기 |
타이족은 약 11세기 즈음에 중국 남서부에서 동남아 반도로 이주해왔다. 이후 인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몬 왕국, 크메르 제국, 말레이 군주국들이 등장하여 현재 태국계 왕조인 수코타이 왕국, 란나 왕국, 아유타야 왕국과 경쟁을 별였다. 명사에 따르면 14세기말 원나라에 이어 명 태조가 섬라곡국(暹羅斛國)을 섬라국(暹羅國)으로 인정하여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유타야 왕국의 시기인 1511년부터는 포르투갈인들과 만나며 유럽과의 교역을 시작하였고, 아유타야 왕국은 15세기 즈음에 전성기를 맞아 지역 강국으로 번성하였다. 허나 왕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1767년에 버마-태국 전쟁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탁신 장군이 왕국을 재통합하는 데에 성공했고, 단명한 톤부리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탁신 장군은 폭정으로 신망을 잃었고, 현재 짜끄리 왕조의 시조인 풋타엿파쭐라룩이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였다. 이 왕조는 현 국왕인 라마 10세까지 왕조를 이어오고 있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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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B | 태국 밧 (Thai baht) | ฿ | 2 |